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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69회

안동일 작

노익장의 마지막  전투

“이 글을 재대로 알아볼 사람이나 저쪽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먹물을 빨리 말리기 위해 솜방망이를 들이대고 누르는 아진의 옆에 다가서서 감탄의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정효가 한마디 했다.
“틀림없이 누군가 있다. 저 성을 꾸려낸 실력이라면 누군가 라운 옆에 인물이 있었다는 얘기다. 걱정 말고 가져가도록.”
잠시 후 긴 창에 흰 천을 매단 정효와 병사 한사람이 말을 타고 초원을 갈랐다.
아진은 그사이 병영을 한 바퀴 순시했다.
병사들은 절도있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눈길이 자주 갔는데 오히려 그들이 걱정을 끼쳐 송구하다는 태도로 나오는 통에 아진은 더 미안해 졌다.

그로부터 열흘 뒤.
드디어 마지막 결판의 날이 왔다는 것을 대창하는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은 당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성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행한 것이었고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사자로 갔던 정효는 심한 모욕과 망신만 당하고 돌아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면으로 정효의 파견이 던진 후과는 적지 않은 것이었다.
정효의 협상 시도가 결렬 된 뒤 창하군은 간헐적으로 성을 공격 했다. 서전에서의 실패 때문에 조심에 조심을 다한 공격들이었다. 해자는 거의 메워져 있었다. 방포와 공성차를 이용한 공격이었기에 성측의 피해는 결정적이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손실을 입어야 했는데 심리적으로 느끼게 되는 불안이 더 컸던 모양이다. 저 녹녹치 않은 대군이 저 뛰어난 장비를 가지고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신들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고 느끼면서 생겨난 불안은 일종의 공황으로 빠지게 했던 것이다. 닷새쯤 지나서 정효의 숙부뻘 되는 부장 한사람이 성을 이탈 해 부하를 이끌고 투항해 왔으며 그 후 이런저런 투항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그래도 성안 병력의 7할은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지만 물이 문제였다.
성안에는 작은 샘물 몇 개 밖에 없어 가장 중요한 수원으로 성에서 5리쯤 떨어진 실개천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그곳과의 내왕이 되지 않는 통에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도 심리적 공황이 더 큰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결판을 내야할 시점이 다가왔다고 온몸으로 솟는 투지를 느끼면서도 대창하는 웬지 쓸쓸하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있을 엄청난 일에 대한 전장을 누벼온 노장군의 직감이었을까.
공성차의 연이은 공격에 남문 쪽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있었고 불화살 공격으로 문과 누각에 불길이 솟고 있었다.
“섣불리 올라서지 마라.”
군사들이 성쪽으로 달려가며 사다리를 꺼내려 하자 아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아진의 고함은 전투의 소음에 휩싸여 군사들에게 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한번더 물러섰다가 공격을 시도하도록 하라.”
아진이 부장에게 지시를 했다.
부장이 곧바로 지시를 하러 성쪽으로 말을 몰았다. 이때 남아 있는 왼편 돌출된 누각 위로 한 떼의 궁수들이 올라서는 광경이 아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성벽 쪽으로 달려가는 부장이나 군사들의 시야에는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방패차를 저쪽으로 이동하라. 동편 누각을 경계하라.”
아진이 서둘러 소리쳤다.
그러면서 아진은 황급히 말을 몰아 방패 차 이동을 직접 독려했다.
하지만 방패 차 부대가 그쪽으로 이동하기 전 화살들이 아군 쪽으로 쏟아지기 시작 했다.
아진은 옆에 세워져 있던 방패를 집어 들고 화살 비 속으로 말을 몰았다. 곁에 서 있던 직속 부대의 부장들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옆쪽 방비가 없는 말을 탄 아군 병사들이 여럿 쓰러졌다. 말들이 놀라 우왕좌왕 하는게 더 문제였다. 아진과 부장들은 군사들의 공격방향을 화살의 정면으로 향하게 했다. 방패를 이리저리 휘두르며 날아오는 화살을 막느라고 막았지만 아진이 말에서 떨어진 부상병 한사람을 일으켜 세우느라 손을 뻗는 사이 화살 하나가 그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 공교롭게도 갑옷의 이음새가 있는 부분이어서 날카로운 화살 촉은 쉽게 옷을 꿰둘었다. 아진은 불 꼬챙이가 어깨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나 그냥 하던 동작을 계속 했다.
그러는 사이 방어 판을 단 공성차들이 도착해 선두에 섬으로써 공성 대오는 다시 갖춰 졌지다. 50여기 이상의 군마가 희생을 당한 뒤였다.
아진은 황망 중에도 군사들의 동요를 막으려 자신의 부상을 감췄다. 화살이 어깨에 박혀 진 화살을 꺾어 버렸던 것이다. 다행히 출혈은 많지 않은 듯 했으나 통증은 대단했다.
성은 마침내 함락 됐다. 공성차의 마지막 진격에 남아 있던 서문 일원의 성벽이 허물어지면서 고구려 기병이 보병과 함께 물밀듯 밀려들어갔고 잠시 저항하던 적군은 성 안쪽으로 쫒겨갔다가 이내 백기를 들고 항복을 해왔다. 끈질겼던 저항 치고는 너무도 싱거운 마지막이었다.
아진은 계속 어지러움이 밀려오는 통에 제대로 지휘를 할 수 없었다.
성안 전투는 고구려 부장들의 차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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