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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72회

안동일 작

18. 에필로그,  장수왕 영화 

2000년대 후반 서울 한남동.
오랜만에 신해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대학 동창인 신해는 명색은 영화감독이었는데 나이 50이 다 되도록 딱 한편 밖에 만들어 내지 못한 불우한 감독이었다. 아무리 대기만성 이라고는 하지만 남들이 전혀 기억 하지 못하는 작품 하나 달랑 내놓고 감독이라 하고 다니는게 부끄럽기도 하련만 그는 언제나 당당했고 떠들레 했다.
그날 모임은 신해와 나 말고도 다른 친구 두 명이 더 함께 였지만 자주 보는 편인 그 친구들 보다는 나에게는 신해와의 만남이 더 의미가 있었고 실제 오랜만에 연락을 해온 것도 신해였다.
약속장소인 횟집에 도착 했을 때 신해를 비롯해 다른 일행들은 모두 와 있었다.
“어이, 안 박사 너 좀 잘나간다고 얼굴 보기 그렇게 힘드냐. 너 같은 녀석 한 다섯 번 보면 인생 끝나겠다.”
그의 입심은 여전 했다.
“무슨 소리야.”

“너 본지 2년 다 돼 가는데 다섯 번이면 10년 아니냐, 나 같은 놈이 10년 이상 더 살겠냐?”
“웃기고 있네 넌 50년도 더 살겠다. 무슨 인생 결딴 나는 얘기 까지 찾고 그러냐? 심난하게.”
가뜩이나 돌연사 하는 친구들이 많아져 신경이 쓰이는 통에 그 말은 귀에 거슬렸다.
신해는 대뜸 소줏잔을 나에게 건냈다.
“자 후래자 삼배라고 했지. 한잔씩 받으면 딱 석잔 되겠다.”
“어주, 잔을 다 돌리네.”
그는 비위생적이라면서 잔을 돌리지 않았었다. 헬리코 박테리안지 헬리콥터 균이 돈다나.
잔을 비우려는데 일행은 자기들끼리 하던 얘기를 계속 했다.
가만히 들어 보니 고구려 광개토왕 얘기였다.
“뭐, 김 감독이 광개토왕 준비한다고?”
광개토대왕이라, 장수왕과 대창하에 매달려 있는 나로서는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번에 센프란시스코인지 뭐한다고 그랬잖아?” 신해를 쳐다보면서 내가 물었다.
“응, 그건 그거대로 준비하고 있고 이번엔 확실히 대박이야. 대박.”
“엉뚱하기는 이제 시놉 한 장 들고 왔다 갔다 하는걸 거면서…”
“아니야 이번엔 그렇지 않은것 같은데”
영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봐라 봐 이 친구는 항상 형님 알기를 이렇게 쭉정이로 안다니까.”
신해가 다시 얘기를 처음부터 간략히 들려 줬다.
듣고 보니 대단한 프로젝트였다. 왜 그리 녀석이 신바람이 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딱 백 퍼센트 확정돼 진행되고 있는 일은 아니었고 위험요소도 다분히 있었다.
나는 신해의 광개토왕 프로젝트를 장수왕 프로젝트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꼭 내가 그 프로젝트에 참여 하겠다는 욕심보다 실제로 광개토왕보다 장수왕이 더 얘깃거리가 많고 의미가 있다는 나름대로의 확고한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장수왕을 그리려면 당연히 광개토왕을 그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니르아이신, 대창하가 나오게 되면 만주의 문제 까지도 한몫에 거론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신명을 내서 장수왕과 니르아이신의 이야기를 신해를 비롯해 친구들에 들려 줬다.
“알겠지 대단한 인물이야, 장수왕이야말로 우리 역사속 에서 가장 뛰어난 군주라고 할 수 있어. 부왕인 광개토대왕은 자연스레 언급하고 살펴 볼 수 있음이 물론이고…”
나의 신명에 신해도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나리오 작업 벌써 들어갔는데…”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은데 그 부분은 그대로 살려서 1부로 하고 장수왕 부분과 붙이면 되겠네.”
영수가 한마디 거들었다.
“듣고 보니 장수왕이 대단하기는 하네, 하지만 스펙터클한 면에 있어서는 특히 영화를 생각 한다면 광개토왕이 더 멋진 것 아니야? 장수왕은 오히려 드라마 쪽이 더 어울릴것 같은데.”
준호는 약간 다른 생각이었다.
“글쎄 일장일단이 있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광개토대왕이 되었건 장수왕이 되었건 우리가 너무 그쪽 역사에 대해 모른다는 거지. 자네들 로마의 시저나 네로 왕 하다못해 벤허 까지도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실제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마치 확실한 고증이 있는 것 처럼 전혀 의심 없이 말이야.”
“다 영화나 소설 때문이 아닌가?”“그래 그렇기 때문에 역사와 문학, 역사와 예술은 상당히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거지. 그런데 재미있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문제는 로마의 시저나 네로는 실제적이며 구체적으로 다가 오는데 광개토왕이나 장수왕은 막연하게 다가오거든 실제로 보면 오히려 장수왕이 시저보다 5백년 뒤의 인물인데도 말이야.”
“그러네, 따져 보니 정말 5백년이나 차이 나는데.”“그렇다니까, 우리가 우리 역사를 너무 소홀히 했다는 얘기지. 자료 부족이다 뭐다 하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 갔던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 아니겠어? 사실 자료가 부족한 것은 틀림없는데 그렇다고 그냥 신화처럼 전설 처럼 놔두는 것은 후세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야?”
“너희들 클레오파트라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아?

”“클레오파트라를 만들다니, 실제 인물 아니야?”

“실제 인물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녀가 뛰어난 미모를 지녔다 던지 케사르로부터 시작해 폼페이우스, 옥타비아누스 등 로마의 장군들과 열정적인 연애를 했다 던지 뱀에 물려 자실을 했다 던지 하는 사실들은 다 소설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라는 거 알고 있어?”

“그랬던거야.?”

“그럼 세르반테스라고 스페인의 문호인데 자네들도 잘 아는 돈키호테 쓴 사람인데 그사람이 클레오파트라를 문학속에서 생생하고 처연하게 재현해 낸 것이지, 그후 그의 소설에 들어 있는 애기들이 거의 역사와 혼재 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사실처럼 각인된 거지.”

“우리나라도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경우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군. 문학 쪽에서 발굴한 인물들 아니야?”

“최근에 한참 줏가 올렸던 대장금도 사서에는 당 한 줄 밖에 나오지 않는다면서?”

“그렇다고 그러지.”
“자네가 쓴다는 대창하 장군도 그런거 아니야?”

“그래, 사서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아. 그저 익명으로 여진 장군의 한사람으로 나올 뿐이지.”

“참 소설가들의 상상력이란 대단한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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