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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신약 성서 ‘시나이 사본’ 뒷 이야기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산,

독일학자 두 달 만에 무려 11만행에 이르는 사본 전체 베낀 끝에…..

 

2005년 8월 3일 영국의 BBC  방송이 예고한 이후 3년 만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사본인 ‘코덱스 시나이티쿠스’(Codex Sinaiticus)가 드디어 온라인을 통해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에서는  ‘시내 사본’으로 알려진 이 필사본은 1600년 전 송아지 가죽 위에 고대 그리스어로 구약 일부와 신약성서 전체가 기록되어 있는 귀한 책이다. .

이 시내 사본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가이사랴의 성서학자 유세비우스에게 그리스어 성경 50권을 제작해 로마 제국 교회들에게 보급하라는 명령을 내려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필사본은 바티칸 사본으로 알려진 ‘코덱스 바티카누스’(Codex Vaticanus)와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성경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약성서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 필사본은 4세기 무렵에 신약성서 내용이 모두 기록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 아니라, 필사본에 기록된 각주들을 통해 초기 기독교 시절 성서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코텍스는 책으로 장정된 필사본 책을 말하는 단어 라고 이해하면 된다.

1859년 2월4일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카트리나 수도원.

시나이 반도, 귀에 익숙한 지명이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던 산, 그 시내산이 있는 곳이 시나이 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이후 모세의 인도로 홍해를 건넌 이후 밟은 땅이 바로 시나이 반도.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방황하며 광야생활을 했던 주 무대 또한 이 곳이기도 해 우리들에게는 낯설지 않다.기독교 초기 시대에는 많은 사막의 은둔자와 수도자들이 시나이 반도의 남부 산악지역에 몰려들었고,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530년 경 이 곳에 있던 시내산 북쪽 기슭에 성 카타리나 수도원을 건축했다. 이후 이 수도원은 시나이 반도에 흩어져 있던 수도자들의 은신처요 기도처였으며, 기독교인들의 중심지가 됐고, 중세기 내내 순례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독일 성서학자 프리드리히 티센도르프(당시 44세)가 상심에 젖었다. 카트리나 수도원에 도착한 지 닷새가 지나도록 소득이 없었다. 짐을 꾸려 독일 집으로 직전, 수도원 책임자에게 라이프치히에서 발간한 구약 70인역 성경을 선물했다 도로 가져가기 무거웟던 거도 큰 이유였다.  그랬더니 돌아온 말.
“우리도 70인 역본이 있습니다.”
외부인에게는 잘 공개되지 않는 방의 벽장에서 꺼낸 붉은 보자기에 담긴 양피지 꾸러미를 보고 티센도르프는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한번 읽어나 보죠.”
흥분 상태에서 밤새워 양피지 꾸러미를 검토한 티센도르프는 기쁨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었다. 구약의 절반 이상과 신약의 거의 전부, 외경까지 포함된 방대한 성서 사본이었기 때문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매입 의사를 밝히자 수도원 측은 손사래를 쳤다.

그리스 정교회(Orthodox Church)의 종주 격인 러시아 차르(황제)의 소개장도 소용없었다. 간신히 필사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티센도르프는 카이로에 체류 중이던 독일인 서점상 등을 불러 두 달 만에 무려 11만행에 이르는 사본 전체를 베꼈다.
동시에 이곳 저곳에 긴급 도움 요청을 보냈다. 러시아 차르가 공석 중인 수도원 총원장과 대교구 선출권 등을 약속하며 달랜 끝에 티센도르프는 ‘빌려간다’는 각서를 쓰고 사본 전부를 손에 넣었다.

신약성서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는 ‘시나이 사본(Codex Sinaiticus·사진)’이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카트리나 수도원은 왜 소중한 성경을 꽁꽁 감췄을까. 무지와 방어심리 탓이다.

티센도르프가 이 수도원을 처음 방문한 시기는 1844년. 청년(29세) 티센도르프는 진귀한 보물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썼다.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희랍어 성서 사본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귀한 성서 사본이라는 티센도로프의 말에 한 수사의 탄식이 돌아왔다. “썩은 양피지 두 광주리는 이미 땔감으로 썼는데….” 수도원에서 43묶음만 얻은 그는 라이프치히에 돌아와 1846년 인쇄본으로 발간,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853년 다시 찾은 수도원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양피지’를 상업적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린 뒤끝이어서 창세기 몇 장만 얻은 채 돌아왔다.

1859년 3차 방문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둔 그는 시나이 사본을 차르 알렉산더 2세에게 헌정하고 출판 후원금도 얻어냈다. 소비에트 러시아는 공산혁명 후 1933년 10만파운드(요즘 가치 약 109억원)를 받고 영국에 넘겼다. 소련은 현명했을까, 무지했을까. 파티마의 성모님은 전후사정을 다 알고 계셨다.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 하셨다.

 

<시나이산 전경>

시나이 사본 말고 유명한 신약 사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알렉산드리아 사본 (Codex Alexandrianus)
이것은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5세기 초의 사본이다. 이것은 162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영국의 찰스 왕에게 증정한 것으로서 1751년 이래 지금까지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 (Codex Bezae Cantabrigiensis)
이것은 5세기의 사본으로서,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 번역문의 대조판 사본이다. 4복음서, 사도행전, 요한3서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많이 다르다. 사도행전의 경우는, 다른 사본에 비해 1/10이나 길다. 이 사본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가 1562년 프랑스 리용의 한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다. 그가 이 사본을 1581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켄터브리지언)대학교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이라고 부른다.

클라로몬타나 사본 (Codex Clarmont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여기에는 바울서신과 히브리서가 들어 있다. 위의 DEA사본을 얻을 무렵과 같은 시기에 취득하였다. 그러나 DP를 얻은 장소는 클레어몽 수도원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클라로몬타나 사본이라고 하며, 이 사본은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라우드 사본 (Codex Laudi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조 사도행전인데 영국의 대주교 라우드(Laud)가 1636년에 옥스퍼드의 보들레이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에프라임-시루스 재생 사본 (Codex Ephraemi Syri Rescriptus)
이것은 거듭 쓴 양피지 사본이다. 본래 쓰여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이다. 본래 쓰여 있던 것은 5세기의 신약 사본인데, 12세기에 그것을 지우고, 지운 본문 위에, 4세기 시리아 교회의 교부였던 에브라임 시루스의 조약과 설교를 썼다. 1700년경에 프랑스의 설교가이자 학자인 삐에르 알릭스(Pierre Allix)가 발견하였다. 티셴도르프는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본래 거기에 쓰여 있던 5세기의 신약 본문을 60퍼센트까지 해독하여, 1843년에 출판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19세기까지 발견된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다. 이런 사본들은 본문 비평에 큰 자료를 제공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 더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바티칸 사본  (Codex Vaticanus)
이것은 4세기 중엽의 사본으로서, 1475년 이래 바티칸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약에는 히브리서 9장 14절 이후가 없고, 목회서신, 빌레몬서, 계시록이 없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라서는 시내 사본보다 약간 고대의 것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강하게 반영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둘 다 같은 때에, 곧 콘스탄틴이 성서 50부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을 때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워싱턴(또는 후리어) 사본 (Codex Freerianus)
이것은 5세기의 4복음서 사본이다. 4복음서가 마태, 요한, 누가, 마가의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미국인 사업가이며 자선가인 후리어(C. L. Freer)가 1906년에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지금은 워싱턴 시의 스미소니안 인스티튜션의 예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명 ‘후리어 복음서(Freer-Gospels)’라고도 한다. 다른 사본과 비교하여 볼 때 특이한 것은 마가복음의 ‘긴 끝(16:9-20)’ 안에서 14-15절이, 다른 사본과는 달리 더 길게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코리데티 사본(O) (Codex Koridethianus)
이것은 9세기의 4복음서 사본으로서, 그것이 발견된 카스피아 해 부근 코카사스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의 이름 코리데티(Koridethi)를 따서 부른다. 이 사본은 전 소련 연방 조지아의 수도 티플리스(Tiflis)에 있다.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은 대다수가 9세기 이후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에서 낭독되는 그리스어 성구집(Lectionaries)에 인용된 성서 본문도 대다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을 반영한다.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경이 7월 24일 인터넷에 최초로 공개됐다.

1844년 콘스탄틴 티쉔도르프(Constatin von Tischendorf)가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우연히  시내 사본을 발견하기 전까지 기독교에서는 4복음서 중 마태복음이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라고 공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내 사본에서 마가복음 16장 9~20절에 해당하는 예수 부활 기사가 빠져 있다는 것이 확인된 후, 19세기 말 신학계에 마가복음이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되었는지 여부 등 4복음서를 둘러싼 논쟁을 일으켰다.

현재 인터넷 홈페이지(www.codex-sinaiticus.net)에는 역대 상, 에스라 후서, 에스더, 경외서인 토빗(Tobit)서,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시편 등 구약성서 일부와 마가복음이 기록된 시내 사본 원본이 고해상도 이미지로 제공되고 있다. 또한 필사본의 일부를 영어와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내 사본의 번역본은 훼손을 막기 위해 학문적 연구를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공개되어 왔지만, 온라인 공개로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원본과 번역본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필사본의 원본과 번역본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영국, 러시아, 독일, 이집트 4개국이 페이지 별로 나눠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공동 작업을 벌였다.

 한때 성직자들만 볼수 있었던 성경은 신도들의 피와 땀으로 발굴하고 출판하고 보급한  최고의 베스트 셀러 이며 동시에   이처럼 피와 땀이; 스며있는 귀한 인류의 보배다.    (아이굿 뉴스, 기독일보,  위키 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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