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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이민 현장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7회

 

안동일 작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윌리는 카니를 원망 하는 심정이 들지 않았다. 카니가 자신을 속인 것은 없었다. 자신이 한번도 그런 문제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가뜩이나 윌리에게 좋은 감정을 지니지 않고 있는 파트너 중의 한사람인 헤리슨이 이 소동을 알게 된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눈을 떠보니 날은 밝아 있어 커튼으로 햇살이 들어 오고 있었고 카니는 아직 잠에 빠져 있었다. 윌리의 팔을 벤채 였다.
대개의 경우 전날의 그런 폭풍 같은 밤을 지내면 아침에 무언가 허탈하고 씁쓸하기 마련 이었는데 그 날은 그렇지 않았다. 웬지 상쾌 했고 전날의 그 감미로움이 아직 남아 있는듯 했다. 아직도 자신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새근새근 잠에 떨어져 있는 카니의 얼굴을 쳐다 보면서 윌리는 정신적인 교류 없이 육체 만으로도 사랑이란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경우 이겠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윌리가 가만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옷을 입기 시작 했을때 몇번 뒤척이던 카니도 눈을 떴다.
“왜 벌써 일어나려고?”
“난 늦잠은 질색인 체질이라서…”
어차피 일요일 이었기에 게으름을 부려도 좋았지만 윌리의 제안으로 둘은 아침 산책에 나섰다.
아침 바다는 다소 쌀쌀한 감이 있었지만 상쾌 했다. 멀리 등대에서 시작된 검푸른 파도가 반달 처럼 펼쳐진 백사장으로 밀려와 부서지고 있었다. 거대한 욕망도 엄청난 야망도 부서지면 한낱 포말로 변하는 이치를 갈매기들이 까욱대며 일러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별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손을 잡고 걷기만 했다. 그러나 윌리의 머리에는 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 것이었다.
귀신에 홀린듯 하룻밤을 지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크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당초 생각했던 대로 하룻밤의 인연으로 끝내기에는 카니라는 여인이 너무도 매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윌리의 미련이 그를 엄청난 수렁으로 밀어 들게 했던 것이다. 그녀에 대해 아는게 너무도 없었다. 그러나 압도하는 자연의 경관 앞에서 사소한 문제 일 수 밖에 없는 그녀의 신상에 대해 더 묻는 것도 웬지 내키지 않았다.
카니 또한 윌리에게 운명과도 같은 매력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어제와는 달리 그녀의 눈에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냥 걷기만 했던 산책이 끝난 뒤, 그날도 두사람은 카지노 측의 교묘하고도 집요한 유인에 못이기는 채 블랙잭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해야 했다.
적당히 잃어 줬는데도 아직 칩은 많이 남아 있었고 카지노 측에서도 됐다 싶었을 오후 무렵 두사람은 테이블에서 일어 났다.
마침 그무렵 윤호와 스텔라가 테이블로 그들을 찾아 왔다. 윤호는 영 딴 사람이 된듯 신나는 표정이었다. 평소에 여자에게는 잔정을 흘리지 않는 윤호의 태도가 상당히 변해 있었다.
스텔라와 윤호야 말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것 같았다. 누가 봐도 그들 두사람이 어제 처음 만난 사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두사람은 다정하게 서로 썩 잘 어울리는 한쌍 이었다.
윤호는 스텔라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아 낸 듯 했고 두사람은 무슨 약속을 한것 같았다. 사실로도 윤호와 스텔라는 그날의 만남이 서로의 인생을 바뀌게한 만남이었다. 그뒤 얼마간의 우여 곡절은 있었지만 지금 스텔라는 윤호의 아내가 되어 있고 그들 사이의 두딸을 키우고 있다.
윌리가 카니와 관계를 지속하게 된것에는 윤호의 이런 사정도 무관치 않았다.
그날 그들 네사람은 호텔 주차장서 헤어 졌다. 헤어지면서 윌리가 연락처를 알려 줄까 망설이는 사이 카니가 급히 갈겨 쓴 종이를 건네 왔다.자신의 호출기 번호가 적혀 있는 쪽지 였다. 마지막에 *표 를 세번 눌러 달라는 주문도 함께 였다.
카니와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 됐다.
며칠 동안은 워낙 바쁘기도 했고 또 너무 빠져 들면 안되겠다 싶은 생각에 카니에게 연락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날 밤늦은 시각 불현듯 카니 생각이 나서 그녀가 알려준 페이징 넘버를 돌렸다. 윌리는 그때 자신의 아파트에 있었다.
의미없이 틀어져 있던 거실의 텔레비젼서 흘러 나온 연속극의 대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왜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애인을 한결 같이 허니 아니면 베이비라고 부르는지, 그날도 어느 여인이 자신의 애인을 베이비라 부르는 베드신이 윌리를 견딜 수없이 자극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카니로 부터의 연락은 다음날 회사로 왔다.
호출기에 남긴 번호는 집전화 번호 였는데 어떻게 회사 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지만 반가운 마음이 먼저 였다.
그날 저녁 윌리와 카니는 허드슨 강변 나라 식당에서 만났고 그리고는 윌리네 아파트로 가서 뒤 엉켰다. 그런 만남은 몇차례 계속 됐다.
카니는 파내도 파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여인이었다. 윌리는 카니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을 때면 어떨 때는 자신이 골프공 처럼 작아져 그녀의 가슴을 굴러 다니며 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도 했고 어떨땐 커다란 에드발룬이 되어 그녀를 태우고 하늘을 날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만큼 카니는 신비하고 변화 무쌍한 여인이었다.
윤호의 얘기도 있고 해서 카니가 예사 여염집 여인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 하고 있었지만 그처럼 무서운 배경을 지닌 여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카니는 푹칭파라 불리우는 차이나 타운내에서도 가장 악날하기로 소문난 갱단의 두목 제임스 흥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윌리는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야 했다. 20대 초반의 동양계 청년들이었다. 윌리가 막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려서자 청년들이 그의 앞을 막아 섰다. 그날 따라 지하 주차장이 아닌 뒷마당 야외에 차를 주차 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슨 일이요?”
윌리가 물었다.
“윌리 정 변호사 나리, 잠깐 저쪽으로 가실까.”
괴한들 중 하나가 중국인 특유의 영어 발음으로 말했다. 녀석들은 윌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대뜸 카니와 관련된 일이구나 싶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윌리의 목소리에도 노기가 띄어 있었다. 여차직 하면 발차기를 날릴 태세로 코트의 단추를 풀었다.
청년들은 수를 믿는지 별 경계 없이 윌리에게 다가왔다.
잔뜩 경계를 하면서 윌리가 다시 노기띤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일이냐니까?”
“잠깐이면 된다는데…”
“여기서는 왜 안돼? 도대체 당신들 누구야?”
“조용히 말로 할려 했는데 꼭 강제를 써야 겠어?”
한녀석이 주먹을 손바닥에 두들기면서 다가섰다.
“당신들이 누군지 알아야 초대에 응해도 응할 것 아니야?”
윌리는 이런 싸움을 해봐야 득이 될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고 녀석들이 어디로 가자는지 일단 들어 보기로 작정 하면서 던진 말이었다.
“당신 카니 정 알지? 그녀와 관계된 일이야.”
역시 윌리의 짐작이 맞았다.
“카니? 그녀가 어떻게 됐는데?”
그녀가 심하게 다치거나 무슨 사고가 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면 우리도 점잖은 사람들이야, 우리보다 더 점잖은 분이 당신을 보자고 그러니 가서 만나보면 알게돼.”
“그사람이 누군데?”
“가보면 안다니까.”
그때 시끌벅적한 소리 때문이었지 아파트 경비원이 다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는 가스총에 손을 가져 갔지만 윌리가 아무일 아니라고 만류하면서 녀석들을 따라 나섰다.
윌리가 안내 된 곳은 카니와 자주 갔던 나라 레스토랑 이었다. 녀석들의 말대로 그들 보다는 나이가 더 들어 있고 차림새도 낳은 30대 중반의 중국인 사내가 식당 입구 주차장에서 윌리를 맞았다.
그는 자신의 소개도 없이 단도 직입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 다시 한번 카니와 만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리겠어, 오늘도 우리 애들은 무장하고 있었어 차에서 내릴때 소음총 한방이면 아무리 날고 기는 변호사라도 끝장이라는 것 알지?”
빙 둘러 싸고 있던 청년 들이 녀석의 말을 증빙이라도 하려는 듯 자켓을 벌렸다. 정말 소음총인지는 모르 겠지만 녀석들 가운데 몇몇은 허리춤이 불룩 했다.
“이봐 친구,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따위 버르장머리로 뭘 어떻게 하려고 해? 내가 누구와 만나던 당신이 왜 상관이야? 그 이유가 뭐야?”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해 보는 협박 이었고 또 총가진 녀석과의 첫 시비였다. 그러나 윌리는 오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식당 현관에서 주차맨들이 빤히 보고 있는 곳 이었기에 이들이 총을 쏘지는 못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나섰다. 이런일에 지레 겁을 먹고 주눅이 들면 더 일을 그르치게 된 다는 것을 윌리는 사건수임의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총앞에 선 자신의 운세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푹칭파 졸개들은 상대를 잘못 봤고 또 너무도 미숙하게 일을 처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친구 안되겠는데,정말 태워 버려야 알겠어? 엉.”
녀석은 너무 다혈질이었다.
다짜고짜 주먹이 날라왔다.
잔뜩 준비하고 있던 윌리가 이 주먹에 맞을리 없었다.
윌리는 고개를 가볍게 뒤로 제껴 피하면서 녀석의 정강이를 옆으로 걷어 찼다. 녀석이 고꾸라 졌다.
주위에 있던 녀석의 부하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우 하고 달려 들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차마 총은 뽑지 못했다. 한녀석이 윌리를 향해 헛주먹을 날렸다. 한녀석이 윌리의 허리를 태클 하려는 듯 맹렬한 기세로 달려 들었기에 윌리는 재빨리 뒤쪽으로 몸을 빼 마침 주차 해 있는 밴을 등에 지고 섰다. 넓은 곳에서 여럿과 상대 하려면 벽을 등지고 서 한쪽이라도 신경쓰지 않도록 해야 했다. 10여년전 도장에서 배운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 신기했다.
“이게 너희들 초대인가? 너무 예의들이 없다고 생각지 않는가?”
윌리가 전투 태세를 갖추며 한마디 했다.
그때 갑자기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 오면서 주차장이 환해 졌다. 경찰이 윌리등이 있는 곳을 헤드라이트로 비춘 것이다. 윌리 아파트의 경비원이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식당에서도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경찰차가 네 대나 달려와 있었다.
윌리의 생각으로는 식당이 놈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 곳이라 여겼는데 그렇지 모양이었다. 일이 참 싱겁게 됐지만 또 묘하게 꼬인 셈이었다.
윌리는 녀석들과 함께 경찰차에 태워져 경찰서에까지 가야 했다. 놈들의 뒷춤에서 권총이 두자루 나온 것이 결정적이었다. 윌리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자신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경찰에게 말했지만 콧수염의 기분나쁘게 생긴 백인 경찰은 윌리를 갱단의 일원으로 여기는 듯 기분 나쁠 정도로 강압적으로 나왔다.
수갑을 채우지 않은게 그나마 고맙게 여겨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 당직을 서고 있는 경위가 윌리와 안면이 있는 친구였기에 더 이상의 험한 꼴은 안 당해도 좋았고 금방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녀석들은 꽤나 골치 아프게 얽혀야 했다. 윌리는 이지역 주민 이었고 또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었지만 녀석들은 모두 뉴욕을 주소로 가지고 있었기에 다짜고짜 경찰서 지하 유치장에 수감 되었던 것이다. 윌리는 큰 피해도 없었고 카니가 걱정이 돼 굳이 고발 하지는 않겠다고 했지만 경찰에서는 불법 무기가 나왔기 때문에 방면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은 참 묘하게 꼬였다. 윌리가 경찰서에 끌려간 사실이 지역신문에 조그만 일단 기사로 까지 나왔고 다음날 형사 두사람이 회사에 까지 찾아와 온통 소문이 다 나 버린 것이었다.
카니가 제임스 흥의 여인 이라는 것은 형사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그러나 윌리는 카니를 원망 하는 심정이 들지 않았다. 카니가 자신을 속인 것은 없었다. 자신이 한번도 그런 문제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가뜩이나 윌리에게 좋은 감정을 지니지 않고 있는 파트너 중의 한사람인 헤리슨이 이 소동을 알게 된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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