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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 소설> ‘구루의 물길’ -제 34회

안동일 작

-천도(遷都) 그 험난한 길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수도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수도는 또한 사회와 경제 및 문화의 중심지였다. 또 수도는 지배층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공간이었다. 고구려가 영토를 대폭 늘리면서 아울러 인구와 귀족이 많이 증가해 국내성이 비좁아진 것도 천도의 이유로 꼽혔다.
평양의 입지 조건은 국내성과 사뭇 달랐다. 국내성은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주변에 들판이 있다고는 하지만 산간지역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수준을 넘기 어려웠다. 즉, 외적의 침입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장점이었고, 거꾸로 외국과 교류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 반대로 평양은 육로 교통만이 아니라 특히 바닷길로의 연결이 쉬운 데다 주변에 널찍한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한편 교통의 어려움이 크던 당시 널찍한 농경지가 주변에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었으며, 옛 고조선의 수도였고 오랫동안 중국인들이 선진 문화를 향유하며 거주한 곳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특징이었다. 이미 고구려는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상황에서 국내성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장수왕은 평양 천도를 즉위 직후부터 생각 했으나 권신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 크게 표 내지는 않으면서 내심으로는 평양 천도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 시켰다.
측근으로 꼽히게 된 석수장이 출신 아진도 돌을 잘 다룬다 해서 일찍부터 평양에 파견 돼 도축부도감으로 5년의 세월을 일하게 했다.
물론 그사이 위나라 사신 행렬에 무종관으로 참여 하게 했고 때때로 도성으로 불러오려 정세를 일러주고 보고를 듣기도 했지만 즉위 8년째였던 421년 이후부터 아진의 주 근거지는 평양으로 되어 있었다.
아진은 벌써 평양에 크지는 않지만 저택을 하사 받아 아내인 무미와 두 아들을 살게 하고 있었다. 또 평양의 새 도성 대성산성 남벽에 새로 조성된 물길 가산과 그 인근 부락은 아진의 영지와 다름없는 기반 이었다.
아진은 왕의 인척이 되기도 하는 무미를 아내로 맞아 한발 더 왕에게 가까이 다가섰고 사람들도 아진의 미천한 물길 출신을 들어 그를 업수히 여기고 무시하지 못하게끔 되었다.
왕이 중신을 선 아진과 무미의 결혼식은 그 어떤 결혼식 보다 성대하게 치러졌었고 당연히 왕도 직접 참석을 했었다. 왕은 사흘 밤에 걸쳐서 벌어진 혼인잔치에 매일 참석을 했고 고구려에는 구루니 물길이니 말과 풍속의 다름은 큰 의미가 없다는 훈시를 여러 차례 내리기도 했었다.
아진은 혼례 후 일년간을 무미네 집에서 지냈는데 고구려의 사위들은 대개 그래야 했다. 서랑이라고 사위를 맞게 되면 집 뒤에 한 채의 집을 더 지어 사위와 딸이 살게 했던 것이다.
무미의 아버지 연조웅은 속이 트인 호걸이었다. 은퇴해서 특별한 관직은 갖고 있지 않았기에 바쁘지 않아 말갈인 사위 아진을 완전한 고구려 무장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고 아진에게 나름대로 정성을 쏟았다.
아진은 말객을 거쳐 지금 중장군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중장군은 대형의 직급이었다.

다시 왕의 집무실.
“어느 부에 군사가 가장 많이 집결해 있는가?”왕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환나부가 가장 많습니다.”
무종장 대모달이 대답했다.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고?”
“천은 족히 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많은 병력이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용인 했단 말이오?”원로 제가 중의 한사람이 옆에 있던 병부대로 에게 힐책 하듯 물었다.
“한번에 그렇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나누어 들어오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각부에서 백 명, 이백명 정도의 움직임은 왕왕 있는 터여서 도성 수문장도 제지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도성의 법이 있는데”
“누가 가서 따져 보기는 했소?”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참, 사람들 하고는. 그러고도 나라의 병권을 책임지고 있다 할 수 있겠소?”
병부대로며 도성패자 대모달 주부 등 무장들이 닥달을 당하는 형국 이었다.
자리에 있던 아진도 자신의 책임인 양 송구스런 느낌이 들었다.
“아진, 내가 환나부로 가겠다. 차비를 차려라.”
왕이 내군 참위를 제치고 아진에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대왕께서 그곳을 친히 납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직 도성은 나의 도성 아닌가. 내가 가서 환나의 붉은 수염 노인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 겠다.”
“위험한 일입니다. 지금 내군의 병력은 환나의 병력에 미치지 못합니다.”
“군사를 이끌고 가는 게 아니다. 아진과 병부대로만 같이 간다.”
“불충한 말씀입니다만 혹여 연금이라도 당하시게 된다면 뒷일을 어떻게 감당 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이일도 감당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저들과 더불어 나라를 경영 한단 말이오.”
왕이 분연히 자리에서 일어서 회랑 쪽으로 성큼 몸을 움직였다.
아진도 황망히 왕의 뒤를 따라 나섰다.
회의전 앞 회랑에 세워 두었던 단창을 꼬나 쥐었고 선반에 올려 두었던 작은 부월 두개를 허리춤에 꽂았다. 양날 도끼인 부월은 지난번에 위나라에 갔을 때 구입한 귀한 병장기였다.
앞서 걷던 왕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봉당 까지 우르르 따라 나와 자신들도 함께 가겠다고 했지만 왕은 이미 말 한대로 아진과 병부대로 나마가천만 따라 나서라 했다. 왕은 숙직병사에게 장식 있는 의전용 어전마차가 아니 일반 행궁 마차를 준비하라 일렀고 아진을 위해 자신의 마필을 가져오라 명령했다. 아진은 자신의 말은 처갓집인 연나부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다.
내군 직참 서황과 말객 세 사람이 더 가세해 7명이 환나부로 향했다. 왕은 병부랑을 자신의 마차에 태웠다. 가면서 무슨 지침을 내릴 모양이었다. 왕의 애마인 혈혈노에 올라 마차를 뒤따르고 있는 아진은 자신도 무슨 지침을 받았으면 싶었다. 창졸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처신을 보여야 할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오늘 환나부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천도에 관한 왕의 의지가 굳다는 것은 아진도 익히 알고 있는 터였고 왕의 그 뜻을 성심으로 좆겠다는 각오를 수없이 해왔던 터였기에 두렵다거나 망설여지지는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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